나의 작업은 비서사적인 시각 감각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 화면 속의 형태, 색채, 그리고 붓질은 고정된 지시 대상(소위 ‘지시체’)을 가리키지 않으며,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주되는 기표들의 체계에 가깝다. 그 안에서 의미는 지속적으로 지연되고, 전이되며, 생성된다. 따라서 ‘본다’는 행위는 더 이상 기호를 해독하는 과정이 아니라, 화면 안으로 진입하여 그와 함께 작동하는 감각적 경험이 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빛은 외부로부터 비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면 내부에서 스며 나오듯 발생하며 여러 겹의 내재적인 빛의 층을 형성한다. 이 빛은 상징도, 묘사적인 밝음도 아닌 하나의 끌림으로 작용한다. 이는 생물의 주광성(phototaxis)처럼 관람자를 자연스럽게 끌어당기고, 머물게 하며, 화면의 층위 속을 이동하게 만든다. 보는 행위는 하나의 초점으로 유도되는 것이 아니라, 빛을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이 된다.
나는 전통 수묵화의 ‘태점(苔點)’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시각적 신호의 노드로 전환한다. 이 노드들은 붓질의 흔적이자 감각의 정착점으로서, 시간의 침전과 공간의 리듬을 담고 있다. 태점이 원형이나 공(空)과 같은 형태로 확장될 때, 그것들은 화면 속 여백이자 통로가 되어, 바위의 동굴이나 숲의 틈처럼 관람자를 화면 내부의 층광 구조로 이끈다.
반복적인 중첩과 조정을 거치며, 화면은 점차 ‘시공간 결정(spacetime crystal)’과 유사한 상태를 형성한다. 이는 시간 속에서 주기적으로 진동하고,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구조이다. 화면은 단일한 감상 경로를 제시하지 않고, 노드와 빛의 층, 그리고 균열 사이에서 진입하고, 감지하며, 머무를 수 있는 다층적인 시각적 장을 열어 둔다.